창업 4개월
이틀 전 예상치 못한 메일을 받았다. 내가 지금 진행하고 있는 서비스와 유사한 서비스를 바탕으로 창업을 준비하시는 분에게서 온 메일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바로 답변을 드렸고 줌 미팅을 통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 분께서는 내가 서비스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여러 블로그에 남긴 댓글을 읽으셨고 그 댓글 통해 나에게 연락을 주셨다. 그 댓글들은 내가 예비소비자라고 생각한 분들께 내가 만들 서비스를 설명드리고 사용하실 의향이 있는지 묻는 댓글이었다. 메일을 보내신 분은 줌 미팅에서 스스로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씀하셨고 본인이 시장을 바라보는 시각과 비전을 나누셨다. 다양하고 넓은 경험을 소유하셔서 그런지 시야가 넓다는 느낌을 받았다. 시장을 바라고 더욱 원대한 문제를 해결해 보고자 하는 의지가 느껴졌다. 팀원을 구하고 투자 유치를 계획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속으로 '창업이란 정말 이런 분들이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줌 미팅은 40분의 제한시간을 가진 회의 링크를 4번이나 열고서야 마칠 수 있었다.
미팅을 마치고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 생각해봤다. 나는 창업가보다는 개발자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물론 창업가라는게 특정 모양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나에게는 멀리 바라보는 시각과 자금을 조달하고 팀원을 모으는 일반적인 모습이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4개월동안 지금껏 제품 개발에만 집중했다. 어떻게 마케팅을 하고 자금을 조성할 것이고 지원금을 받을 것인지는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권도균 대표님이 쓴 책 [스타트업 경영 수업]에서 나온 "5명이 즐겨쓰는 제품"을 만들겠다 하는 생각만 있었다. 그런데 이것이 이루어지고 난 다음엔 무엇을 해야 할까에 대한 질문에 나는 여전히 "제품 개발"이라는 답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내가 할 줄 아는 것이 개발뿐이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투자는 어떻게 받고, 팀원은 어떻게 얻고, 미션은 어떻게 설정하는지 나는 모른다. 이것이 내가 직면하게 될 문제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요즘은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 라는 책을 읽고 있다. 책은 개인의 성공에는 사회와 문화가 크게 기여한다고 말한다. 성공을 개인적인 요소만으로 해석하지 않고 그를 둘러 싼 사회, 문화, 기회 등으로 해석했다. 개인이 한 분야에 충분히 집중할 수 있도록 주변 상황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개인은 소위 1만시간을 한 분야에 집중하므로써 뛰어난 성과를 바탕으로 성공을 이룩한다. 여기서 핵심은 수준 높은 훈련과 충분한 연습시간이다. 즉, 사회가 개인을 성공으로 이끈것은 그들에게 충분히 연습할 시간을 제공한 것이다. 부유한 동네에서 자란 빌 게이츠가 부유한 고등학교에서 컴퓨터를 자유롭게 그리고 충분한 시간을 들여 사용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것이 그 예다. 그럼 지금 나의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은 무엇인가? 나에게는 인터넷이 되는 컴퓨터가 있고 몇달간은 버틸 수 있는 개인 자금이 있다. 내가 속한 상황은 빌 게이츠처럼 아주 부유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시도해보지 못할 만큼 힘든 상황도 아니다. 또한 나 스스로가 극단적으로 똑똑하진 않지만 코드를 읽고 쓰고 이해할 만큼의 지적 능력도 있다. 그렇다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은 최대한의 시간을 개발과 창업에 쏟아 붓는 것이다. 이 서비스가 충분히 동작한다는 지표를 만들고 이 서비스, 사업을 지원해줄 수 있는 기회를 찾고 다시 시간을 쏟아 붓는 것이다. 투자를 받고 팀원을 얻기 어려운 환경에서 좀 더 쉬운 환경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현재 내가 처한 상황과 사회, 문화는 창업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나는 시간을 쏟으며 영역을 개발하고 사회를 이동하는 움직임을 선택할 수 있다고 믿는다.
- 초고 : 9월 16일 13:56
- 퇴고 : 10월 10일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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